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민국의 저출산 (문단 편집) === 산아 제한 정책 시기 === * 대한민국은 출산율은 높았지만 높은 영아사망률로 인구 증가율은 그리 높지 않았다. 그러던 중 [[8.15 광복]]과 [[한국전쟁]] 정전 협정 이후 본격적인 산업화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[[1953년]]부터 [[1960년]]까지는 [[전후 세대|베이비붐]] 현상이 나타나 한국의 합계출산율[*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수]은 6명 이상을 기록하여 급격한 인구성장이 일어났다. * [[1960년대]] 초반 박정희 정부에서 본격적인 [[가족계획]]이 실시되고 "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 꼴을 못면한다"를 필두로 출산억제책을 펼친 결과 [[1964년]]부터 [[1967년]]까지는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4.8명으로 떨어졌고, [[1968년]]부터 [[1971년]]까지는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4.5명까지 줄어들었다. * [[1970년대]] 정부는 여전히 합계출산율이 높다고 판단하여 [[1972년]]부터 [[낙태]] 등 강력한 [[가족계획]]을 실시하여 [[1978년]]에 들어서면서 합계출산율은 2.6명으로 매우 줄어들었다. 이후 제1차 베이비붐 세대(1955-1963년)가 출산을 시작하고 전두환 정부 때 경기호황 등으로 [[1979년]]부터 제2차 베이비붐 현상이 나타나면서 합계출산율은 2.9명으로 다시 올라갔으며 [[1982년]]까지는 합계출산율 2.4명으로 인구대체수준 이상을 유지했다. * [[1980년대]] 초반 정부에서 "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" "둘도 많다!"[* 1980년대는 출산율이 4-6명대로 매우 높았던 1940-60년대생이 사회의 주축인 터라 인구 포화가 당면한 과제였기에 나온 말이다. 그러다가 2000년대부터 대한민국 합계출산율이 1점대 초반을 찍으며 실제로 여성 한 명이 평생 아이 하나만 두는 사회가 되고, 삼천리가 초만원이 되기는커녕 조만간 텅텅 비지 않을까 여러 인구문제를 걱정하는 시국이다. 저 당시엔 이렇게까지 인구 감소가 새로운 문제가 될 것으로는 보지 않았기에 적극적으로 인구 증가를 막으려고 했었다.]같은 가족계획 캠페인 표어를 내세우며 아이를 하나만 낳자고 매우 강력하게 저출산 정책[* 실제로 아이를 하나씩만 낳자고 권장했던 나라는 전세계에서 [[한국]]과 [[중국]] 단 둘뿐이고, 저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산아제한 정책을 한 나라는 거의 없다.]을 펼친 결과, [[1983년]]부터 합계출산율 2.06으로 [[1980년대의 저출산 경향|저출산 현상]]이 시작되었고 [[1984년]]의 합계출산율은 인구대체수준인 2.1명을 훨씬 밑도는 1.74명 수준으로 떨어졌다.[* 1983년 당시의 2.06명의 출산율은 2010년대 이후처럼 사망률이 아주 낮아진 상황에선 딱 인구대체수준이다. 그런데 1983년의 사망률은 2010년대보다는 높았고 심지어 성비까지 불균형했다.] 다음 해인 [[1985년]] 1.66명 수준으로 약간 떨어졌으나 그 이후에도 계속된 정책으로 마침내 [[1987년]]에는 합계출산율이 1.53명 수준까지 떨어졌다. 당시 출산율은 1984년을 기점으로 세계 최하위권으로 떨어졌다.[* 참고로 당시 세계 꼴찌는 1.3~1.5명 수준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